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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의 말이나, 성경을 이해하는데 그 말이 나온 시대적 배경을 이해한 다음 그 말을 이해하는 것은 모든 생각의 기초이며, 이런 사고를하지 않은 채 전개한 해석들에 나는 유독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요즘 읽은 책이 17세기에는 금서였던 것으로, "세 명의 사기꾼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계몽주의가 태동하기 이전에 쓰여진 어둠의 경로를 통해 전해전해지는 그런 류의 책이었는데, 20세기 초의 버트란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와 더불어 주제 자체가 비기독교가 아닌 반 기독교류의 책을 읽을 때는, 그 내용에 집중하는 것보다 더 그 당시의 기독교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고, 그것이 지금과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하게 된다. 확실히 기독교는 변하고 있다.

뭐가 달라졌느냐라는 질문에는 정확한 기술은 회피하겠다. 하도 지하철에서 띄엄띄엄 읽어서 지금은 읽을 당시 느꼈던 느낌만 남아 있으니까.

변한다는 것은 적응한다는 것이다. 중심은 변하지 않을지라도, 아니 혹 이해를 위해 내용이 덧붙여질지라도 사회를 반영하면서 변하고 있다. 기독교가 진화하고 있다고 말해도 돌던지지 마시라. 내가 쓰는 진화라는 용어는 적응된것이 선택되었다라는 뜻으로 쓰는 것이고, 돌던진다는 것은 용어선택이 부적절하다라는 뜻으로 들릴뿐이니까.

어떤 생각이든 생각은 자유롭다. 그 중 상황을 설명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이 선택되는 것이다. 오래된 사상을 따져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왜 그 사상이 그 당시에 선택되었을까이다. 어떤 정황이 있었길래 그런 선택이 가장 적절하게 받아들여졌을까이다. 오래된 사상 뿐아니라 생각지 못했던 모든 생각과 판단에 대해 비슷한 잣대를 대어도 무방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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