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익숙함.


고급 수학이나 물리학을 하다보면, 이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저 단순하게 익숙해지면 의심하는 법을 잊게 된다. 아무리 미분적분이라도, 푸리에 변환이라도,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상태로 어설프게 문제를 풀어 본다. 또 풀어 본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해되는 것일까 익숙해지는 것일까? 익숙해지면 이해되었다는 신경을 건드리는 것 아닐까? 미분적분이 아니라 선형대수, 동역학, 양자역학이 오더래도 비슷한 방식으로 지식을 쌓아 올라간다. 비단 수학,과학뿐이랴, 세상의 어떤 배움도 이해와 익숙함으로 구별한다면, 그 용어들이 주는 깊은 성찰 보다 용어들로 만들어진 거대한 논리 체계에 그저익숙해질 뿐이다.


처음 이론을 제안한 사람은 정교하게 (혹은 익숙한 표현을 빌어)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 그러나 학습자들은 그 이론을 어떻게 제안할 수있었을지 의구심을 갖는 것보다는 논리 자체를 이해하는데 급급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그 이론이 없던 시절과 그 이론 이후에 생기는 변화에 대한 것은 감지하지 못한 채 최종 산출물만 알게 되는 것이다.


익숙함을 굳이 이해에서 출발할 필요도 없다. 이해 없이 익숙해지는 것이 인간이 태어나서 학습하는 기본 방식이니까. 익숙함이란 무지와 앎 사이 어디쯤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완전 새로운 것이 아닌 그 동안 알아왔던 다른 앎 패턴에서 건너와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만들 지식 체계는 이런 구조를 띄고 있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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