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2.27. Wed.

이글은 사람이 어떻게 욕심을 부리게 되는가에대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어린아이를
키우다보니 신기한것중 하나는, 배고플때 젖을 물리면 먹고 싶은 양 이상은 먹지 않는
것을 보았다. 정말 단순하지만, 이 아이가 언제부터는 자기가 먹고 싶은양 외에도 더
먹는 날이 올 것이다. 아까워서, 또는 맛있어서. 어떻게 그런 변화가 생기는 걸까.
누가 그에게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라는 암시를 주었을까?

생명이라는 것은 자극을 받으며, 외부 세계와 통신을 하게 된다. 그 상황의 다양한
반복이 자기 존재와 생명이라는 본능과 연관되어 있는것이다. 그렇다면 자극에는
다음 세가지의 경우가 있을수 있는데, 이는 생명이 처하게 되는 기본적인 상황이다.

첫째로는, 자극이 없는 상황인데, 사람이 자극이 없다보면, 아마 죽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것은,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하며, 그것은 본디 관계를 통해 자기를
알아가는 샘명 현상의 기본적인 능력을 거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적당한 자극이 있는 상황이다. 적당한이라는 말이 참 애매한데, 인간은 그
자극을 느끼는 어느정도의 한계가 있으며, 그 이하는 자극이라하지 않고, 그 이상은
무리한 자극이라 한다. 이 한계를 역치라하며, 역치는 성장하면서 늘어 나는
것이며, 그 역치 정도에서 받는 자극은 "일상"이라는 말로 표현 된다.

세째는, 과한자극을 말한다. 위에서 말한, 역치이상의 자극이며, 의식, 무의식적으로
역치이상에 대한 자극이 모여, 성장하게 된다. 아이가 걸을 수 있게 되기까지 수많은
역치이상의 자극에 대한 경험이 바탕이 된다.

이 세 가지 경우를 보건데, 성장이라는 것은 과한자극이 조금씩 쌓여 생명을 강하게
만들고, 강한 자극 속에는 일부, 성취감과, 어떤 만족이 수반되므로 즐거움으로 남게
된다. 이때, 과한 자극의 한계를 우리는 두려움이라 부른다. 적당한 자극만 있는
일상을 벗어나, 과한 자극이 주어 지지만, 그 과한 자극의 어느 정도에 대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며, 이는 뇌리에 두려움이라는 경험으로 존재하고, 이는
자극 받는 방법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남게 된다.

어릴때에는 적당한 자극에 대한 역치가 너무 낮아, 어떤 조그만일을 해도 과한
자극에 대한 경험이 되며, 성인 봤을때는 늘 모험하며 지내는 삶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과한 자극은 이렇듯 성장을 수반하면서 동시에 두려움에 대한 경험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두려움. 이는 생명으로 하여금, 미래를 준비하게 만든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현재 필요한 것이상을 소유하도록 의지를 발동시키며, 여기에서 의지의 역치가
과도한 의지에 의해 늘어 나게 되고, 이를 우리는 욕심이라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탐닉이라는 것은 그 근본이 두려움에서 출발한 "미래대응의지"를 잊고, 두려움과는
상관없이 자극에 대한 역치 이상에서 즐기는 상황을 말한다.

자극은 인간이 느끼는 모든 일차적인 외부의 정보이며, 인간의 지능은 이 자극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하는 정보체계에 의해 반응하는 복잡한 이성체계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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