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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브 라만차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MAN OF LA MANCHA)는 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1547~1616)의 소설 돈키호테(1605년 발표)를 원작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권위있는 사이트는 아니지만 엔하위키에 따르면, 이 뮤지컬은 1964년 미국 코네티컷에서 초연을 하였고, 한국에서는 2005년 ‘돈키호테’라는 이름으로 초연후  2013년 여섯 번째 재연을 하고 있다. 


2013년 공연은 그 전의 다른 공연과도 비슷한데, 세 명의 주요 인물인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알돈자, 산초에 대하여 더블캐스팅하여 기획되었다. 세르반테스 역에 조승우와 정성화가, 알돈자 역에는 김선영, 이영미가 산초 역에 이훈진, 정상훈이 담당한다. 공연은 여러 가능한 배우들의 조합 중에서 골라 볼 수가 있도록 계획되어 있으며, 본 글은 2013년 공연 기간 중 종료 전일(2014/2/8) 정성화/이영미/정상훈의 조합으로 된 공연을 보고 작성하였다.


돈키호테라는 인물에 대한 설정은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대부분 아는 것처럼 미친 기사의 이러저러한 이야기 정도, 기사도를 풍자하는 소설이라는 정도의 배경지식만으로 본 뮤지컬을 감상하였다. 내용을 다 알지 못해도 원본 소설이 엄청 길며 뮤지컬은 소설과 다른 매체이므로 원작에 대한 부담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극의 시작은 어둠 속에서 경쾌한 라틴음악으로 흐르며 돈키호테가 활약했을 당시의 스페인을 연상시킨다. 아는 것만큼 상상이 될테니, 정확히는 그 연상된 배경이 풍차로 연상되는 네덜란드에 가깝지 않을까? 어찌 상상을 하든 어둠속에서 음악은 변주를 하고 배경이 되는 감옥의 전초를 마련한다.


이 뮤지컬은 극 안의 극 형태를 띄는 구성으로, 재판을 받기 위해 감옥에 갇힌 세무공무원이자, 시인이자, 극작가인 세르반테스가, 같이 들어온 산초와 먼저 있던 죄수들과 “돈키호테"라는 극을 연기하는 형식이다. (내 전문분야에 빗대면 컴퓨터안의 컴퓨터 즉 가상환경이라 할 수 있겠다.) 세르반테스는 먼저 들어 온 수감자들에 의해 옥중 재판을 받는 상황에 빠지고 그 재판을 변호하기 위해 돈키호테를 연기하겠다고 제안을 한다. 따라서 등장하는 배우들은 현실 속의 죄수역과 돈키호테 극 중 인물인 1인 2역을 한다. 심지어 돈키호테는 알론조 키하나라는 늙은 기사지망생(?)이 정신 이상 상태에서 만들어낸 가공의 기사이므로 주인공은 1인 3역을 한다.


세르반테스는 실제 감옥에서 돈키호테를 저술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뮤지컬에서 나오는 종교재판과 같은 이유로 옥살이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뮤지컬이 돈키호테라는 소설부터 시작하지 않고 좀 더 확장하여 세르반테스라는 작가의 상황부터 시작하여 극 안의 극 형태를 띄는 것은 현실과 작품의 전환을 이용하여 시간의 한계 안에서 지루하지 않고 적절하게 끊어주는 구조를 이루게 된다.


내용 중 인물의 내면이 변하는 것은 흥미롭다. 극중 극인 돈키호테의 알돈자는 여관집 하녀이자 몸을 파는 여인이다. 이 여인이 돌시네아라는 레이디로 변하는 것과, 알론조가 잠시 미쳐 돈키호테가 되지만,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 죽기 전에 진짜 돈키호테의 정신을 갖게 되는 부분. 그리고, 이어서 현실의 세르반테스가 다음 있을 종교재판에서 용기를 갖게 되는 부분이 그것이다. 반면, 산초역을 맡은 세르반테스의 시종이자 돈키호테의 시종은 뮤지컬에서는 1인 2역의 모든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헌신을 하는 변함없는 내면의 소유자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뮤지컬 내내 내게 보이던 관점은 이런 내면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1인 3역을 하는 주인공의 여러 층위를 오가며 이루어지는 작품 전환 속에서 재미를 찾는데 있었다. 감상하면서 보여진 알론조에 관한 층위는 이러하다. 알론조의 현실이 있다. 그는 결혼을 앞 둔 조카와 평생 자기를 사랑해온 하녀가 있는 현실을 기본 층위로 하고, 이런 일상을 벗어난 정신 이상상태의 돈키호테를 둘째 층위로 한다. 그리고 그 돈키호테가 이루고자하는 기사도라는 층위가 있는데, 이것은 1막의 마지막 부분에 불리어지는 “Impossible dream”의 한 구절인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손을 뻗으리라”를 통해 강하게 표현된다. 정신을 차린 알론조의 마지막 장면에서 꿈으로 여겼던 그 일들이 모두 현실이었고, 자신이 돈키호테임을 아는 순간, 이런 서로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한 꿈 같은 층위들은 일순간 무너지며 완성을 이루게 된다.


정적인 무대에서 간단한 소품만 중앙으로 배치되고 사라지는 정도만으로도 플롯이 전개되는데는 부족함이 없었고, 호소력있는 목소리의 정성화와 거친 쇳소리를 품은 이영미의 아리아는 이런 흐름을 느끼게 해주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기회가 되면 이제는 내용의 전개보다는 다른 배우들의 조합을 보는 것으로도 비교하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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