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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지

Coolen 2019. 11. 28. 10:00

출근하는 길은 한 시간 정도 된다.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한 시간 동안 가는 거리는 수 많은 변수로 인해 정확한 출근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다. 요일에 따라 날씨에 따라 매번 달라지기 일쑤이지만 그 정도의 시간은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혼자 웃고, 혼자 생각하기 딱 좋다.

가는 동안 하는 일이 또 한 가지있는데, 바로 생가지를 우걱우걱 먹는 일이다. 어릴 적에 집에선 텃밭에서 키운 가지며, 고추, 상추 등을 꺽어 씻어 바로 저녁 식단에 올리는 일이 많이 있었다.

‘어떻게 가지를 생으로 먹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다. 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 것을 의아해 했다. 다른 것은 생으로 먹었으면서 가지는 생으로 먹어 보지 못했다니. 가지도 오이와 마찬가지로 겉만 씻은 후 비슷하게 자르거나 손으로 찢어서 고추장을 찍어 먹었는데, 그런 경험은 흔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챙겨주는 아내에게 늘 고맙다.

락앤락에 담긴 잘 잘린 가지를 옆에 두고 운전 중에 하나씩 꺼내 먹는다. 간단한 요기(?)가 되기도 하고, 졸음 방지가 되기도 한다. 가끔은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방울 토마토도 있는데, 오늘은 요새 잘 먹는 찐 고구마도 있었다. 고구마는 껍질을 벗겨 먹는 것은 힘든 일이므로 고속도로 타기 전 신호등에 걸렸을 때 얼른 먹어야 한다.

그러던 오늘 아침엔 사고가 날뻔했다. 내 차선 앞쪽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갑자기 멈추었고, 나도, 내 뒷 차들도 모두 안전하게 멈추었다. 다행이다. 고속도로 진입 전에 생긴 일이었고, 나는 운전을 계속하면서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락앤락 통을 보조석에 두고 먹는데 사라진 것이다. 아뿔싸, 앞으로 튕겨 나갔네.

고구마는 껍질이 있으니 나중에 먹을 걸.

오랜 시간을 고속도로에서 손은 뻗지도 못하고, 생각만 벋어 나간다. 저거 생가지인데 씻으면 먹을 수 있을 거야. 가지가 하나에 천 원 정도 하던가? 세 조각이 엎어진 통 밑에 보이는데, 정말 타이밍 제대로군, 다시 한번 고구마부터 먹은 것이 후회가 되는구나. 아냐 그때는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잖아? 왜 나는 지금 이것에 신경 쓰이는 걸까?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대략 40분 동안은 손도 못 대는데, 나중에 생각해도 되잖아? 그래, 난 논리적이니까 일의 절차만 생각하자, 생각은 지금 상황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음 한 개정도는 가지의 잘린 면이 위를 향하게 엎어져 있군. 그냥 털어 먹을까? 손세차했어야 해, 요새 내부 청소를 너무 안 했어.

아, 이 무슨 괴로움이란 말이냐

오늘 아침은 이런 상황에 메여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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