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LA Land, Arrivals


두 영화에서 주인공(여자)들은 모두 프리우스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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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로렌스.

미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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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뉴먼이 연기한 프랭크 갤빈(Frank Galvin). 미국의 배심원제 심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지는 영화.

로라(샬롯 램플링)는 정말 정보를 빼돌리려 접근한 것일까?

로라의 변명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 구성.

세상을 너무 정직하게 보아왔던 변호사가 어느 정도 유연(?)한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해 가는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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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쯤 수리중인 비엔나의 보티프 성

80년대 플레이보이 모델 크리스털

Kath Bloom 의  "Come Here"

이름 없는 자들의 묘지, Friedhof Der Namenlosen

대 관람차

쇠라의 소묘 중 철도 : seurat tonal drawing railroad  


담배피는 시인이 써 준 "밀크쉐이크"


Daydream delusion 

Limousine Eyelash 

Oh, baby with your pretty face 

Drop a tear in my wineglass 

Look at those big eyes 

See what you mean to me 

Sweet cakes and milkshakes

I am a delusion angel 

I am a fantasy parade 

I want you to know what I think 

Don’t want you to guess anymore 

You have no idea where I came from 

We have no idea where we’re going 

Lodged in life

Like two branches in a river

Flowing downstream

Caught in the current

I’ll carry you. You’ll carry me

That’s how it could be

Don’t you know me? 

Don’t you know me by now?


에곤 쉴레에 대해서 얘기하는 빨간머리끈을 멘 흰 수염 할아버지. 경청하는 진청색 셔츠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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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서적인 '게임이론' 첫 장에는 대개 내쉬 균형에 대해 다룬다. 게임, 협상 혹은 경쟁관계에 있는 참가자들이 서로의 전략을 알고 자신의 전략을 바꿀 수 있다고 할 때, 자신의 이익이 최대가 되는 상황에서 전략을 바꾸지 않고 균형을 이루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제공한 존 내쉬, 그의 일대기에 대한 영화이다. 러셀 크로우 분. 그는 젊었을 때 이 논문을 발표하고 44년이 흐른 노년에 이르러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다. 수학자가 경제학상을 수상하는 몇 안되는 경우에 속한다. 그들은 대개 경제 모델에 대한 수학적 기초를 제공한 사람들이다.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 후보에 거론될 당시 (필즈상은 40세 미만에게만 준다) 정신분열증(조현)을 앓고 있었으며, 그 병을 앓은 지 40여년이 지나 낫고나서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지명이 된다.


그런 큰 상의 조건에 정신질환을 앓지 않아야한다는게 있나보다. 상을 수여하는 기관이 도리어 욕을 먹는 상황이 발생할까봐 그럴것이라는 암시가 이 영화에서 나온다. 작년 내쉬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이 사람이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었어?하는 마음으로 동시대를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신기함을 느꼈었는데, 심지어 교통사고라니 더 살 수 있었는데 사고사라는 아쉬움도 들었던것 같다. 영화 개봉년도는 2001년이므로, 내쉬는 생전에 자신의 일대기에 대한 영화를 본 것이며, 생전에 자신의 전기영화를 보는 사람도 흔하지는 않을듯.


영화와 겹쳐 드는 생각은 올리버 색스였다. 그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나 화성의 인류학자에서 나오는 희한한 정신병력을 가진 사람들처럼 환상이 평생 따라다니는 병이 있을까? (올리버 색스의 책들을 읽다보면 저 정도는 그야말로 흔한 수준이다. 물론, 그 책들에서는 노벨기념상에 준하는 천재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로운 수학 모델을 제시했고, 심지어 신의 영역에 속한다는 리만가설에 대해 연구하는 장면도 나온다. (리만 가설을 연구하는 사람은 신의 저주가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해 사고사를 당한다는 이야기)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일부러 병을 억제하는 약물투여를 멈추기도하는 장면과 자기에게만 보이는 가공의 인물이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을 인정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극복하는 장면은 인간 정신에 대한 대조를 이룬다. 보이지 않는 정신영역을 물리적 영역으로 바꾸어 약간의 비약을 허용하여 비유하자면, 손가락이 여섯인 천재 피아니스트라고 해야하나? 치료냐 적응이냐라는 관점에서만 비유하자면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평생 살던 대로 정신 상태를 풀어 놓아야하지만, 사회에서 어울리기 위해서는 치료를 해야하는 상황. 영화는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는 아내의 헌신(?)에 대해 이야기 한다. 실제 그러했는지는 잘 모른다. 내 관심사가 아니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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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

나종일, 송규범 지음


2013년 11월 경에 구매한 책.

늘 그렇듯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이 읽어 달라하니 읽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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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민음사, 김욱동 옮김)를 읽다. 1920년 1차대전 직후, 세계 대공황직전이 그 배경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1925년에 그의 나이 29세에 출간한다. (20대에 이런 소설을 쓰다니. 미국 현대 문학에서 대단한 위치를 차지한다.)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주인공인 캐러웨이 닉의 시선을 서술하는 것만으로도 1920년의 뉴욕의 분위기를 잘 전달한다.  배경이 되는 뉴욕의 롱아일랜드 섬의 북쪽에 있는 곶(?)들을 다시 지도에서 찾아보게 만들었다. 지금의 킹스포인트(웨스트 에그)와 샌드포인트(이스트 에그) 정도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3년전이니 참 오랜만에 집어 들었구나.


'에어콘이 없는 여름의 대도시, 부유층의 삶.'


아무 배경 없던 개츠비가 장교로 군복무중 부유층의 소녀, 데이지를 만난이후 자신의 삶을 그녀의 수준에 맞추는 성공(?)을 한 다음 다시 그 앞에 다시 나타난다는 얘기. 물론, 그가 깨끗한 돈을 만지는 직업을 가진 것은 아니다. 데이지 또한 돈 밖에 모르는 그런 여자일 뿐, 그 클래스에서 특히 더 고상한 존재는 않는다. 단지 개츠비의 눈이 꽂혔다는 게 중요하다. 그녀는 헤어진 5년동안 이미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


매주 사회의 저명한 사람을 초청하고, 또 게다가 초청하지 않아도 와서 즐길 수 있는 파티를 열고, 정작 자신은 술에 취하지 않는 개츠비. 묘사되는 파티의 풍경에서 개츠비는 검은 익명의 점에 불과하고, 파티를 한 발 떨어져 관조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어쩌면, 피츠제럴드가 동경(?)했을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한 여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부유층의 삶을 매주 연출하는 그런 부를 이룬다음 마침내 그녀를 집에 초대 했을 때, 그의 부에 황홀해 하는 데이지. 그리고 그런 데이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개츠비. 


돈을 번다는 것.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그 목표를 달려간 개츠비.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 사랑 또한 자신을 계속 사랑할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던 어쩌면 순수한 사랑.사고를 낸 그날 밤도 집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지켜주겠다며 풀숲에서 기다리던 그 모습. 그런 것이 위대한 개츠비의 수식어를 말하는 것 아니겠나 싶다.


책에 나오는 칵테일을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그린 리키, 하이 볼,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있는 센트럴파크 남쪽의 플라자 호텔에서, 사건이 있던 그날 오후에 마시던 민트 줄렙, 여름이 가기전에 한 번 시도해 보는 것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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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ne8th 2016.07.22 12:31 신고

    조만간 칵테일 한잔 합시다.



사실 이 영화를 2년전 쯤 봤던 것 같다. 너무 대충봐서 그런지 기억이 안났던 것이 계속 볼 수 있는 이유였다. 부부(니콜키드먼, 아론 애크하트)는 아이를 교통 사고로 잃고 잊지 못하고 지낸다. 비슷한 처지의 부부들이 모이는 치료 모임에도 몇 번 나가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다. 하나님이 천사가 하나 더 필요 하셨나 보다라고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른 부부의 이야기나 들을 뿐. 아이 잃은 슬픔을 대하는 부부의 태도는 다르다. 남편은 생전의 찍어둔 동영상을 매일 밤 본다거나, 아이의 방, 옷, 핑거프린팅 등을 보존하며, 슬픔을 달래고, 아내는 잊기 위해 버리거나 지워나간다. 


실수로 교통사고를 낸 아이는 평행우주를 소재로 만화책을 그린다. 아내는 교통사고를 낸 이 아이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되고 그 뒤로 몇 번 더 만나면서 마음으로는 용서를 하게 된다. 토끼굴로 이어진 우주들은 사는 사람들은 같지만, 그들의 관계는 다양하다. 행복한 가족을 이루는 우주, 싸우고 있는 우주 심지어 가족 중 누군가가 없는 우주.


신이 아이가 필요해서 데려갔을 것이라는 해석보다 내가 사는 곳은 많은 평행우주 중 하나이며, 어디선가는 그 아이도 잘 살고 있을 것이라는 해석으로 마음을 치유해 간다. 평행우주를 심리치유의 소재로 삼았다는 신선함이 있다.


그 밖에 영화 주변이야기를 한다면, 아론 애크하트는 선한 역과 악역에 둘 다 소화하는 배우인 듯하다. 그래서 몰입이 잘 안되기도 한다. 영화 중 한국인 배우인 산드라 오도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본 이후로 다시 보게 돼 반가(?)웠고, 교통사고를 낸 역의 마일즈 텔러도 익숙한 얼굴이다 싶었는데 다이버전트 시리즈에서 봤던 주인공 중 하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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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ne8th 2016.07.16 11:31 신고

    재밌을거 같군요. 이번주말엔 이걸 볼까나..

    • Coolen 2016.07.16 11:33 신고

      재밌음. 생각보다 대립되는 긴장이 크진 않을지도.^^

Big History 관점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의 이점은 물리학과 생물학, 고고학, 역사학을 비교하면서 종합할 수 있는 것에 있다. 큰 것, 무한한 것, 멀리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막연하게만 하다가, 지구의 크기, 태양계의 크기, 우리 은하의 크기, 우주의 크기, 멀티버스의 크기를 상상하다가 보면 그러한 상상이 막연한 것에서 어느 정도 구체적이 된다. 이런 추론은 내가 사는 곳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하기 좋은 방법이다.


공룡이 살았던 쥬라기라는 지질 시대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상상해보는 것. 아니 오랜 과거로 갈 것도 없이 인간이 사피엔스로서 존재하기 시작할 때 즈음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상상해 보는 것. 그것이 막연한 과거에서 의미있는 과거로 편입되는 것. 이것은 관점의 전환 없이는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 법이다.


"현대인과 생물학적으로 동일했을 20만년전의 호모 사피엔스 종 고아 하나를 데려와 현대의 가정에서 입양해서 키운다고 해도 문제 없이 여늬 현대인과 다를 바 없이 성장할 수 있다"라는 생각 하나가 주는 힘을 생각해보자. 호모 종의 역사는 사실 그 당시부터 시작해도 좋다. 나아가 진화의 역사에서 그 이전 생명체들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를 기술하는 것. 그런 역사에는 지금까지 밝혀진 생물학, 지질학, 물리학들의 결과들이 모두 동원되어 기술될 것이고, 그것은 아름다움에 속하는 학문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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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가 만드는 어떤 기능이란, 완전 무에서 창조하는 것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하위 기능을 조합하여 상위기능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위 기능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위 기능을 조합해야하는데, 하위 기능자체에 버그 혹은 구현 미비점이 있어서 상위기능을 만들어내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우회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야한다. 이때 사용하는 기술에 대한 통칭을 'Hack'이라한다. 정석이 아닌 꼼수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간혹, 하위기능의 버그가 아닌 이해부족으로 우회하는 방법을 사용해야했다면, 이것은 Hack이라 할 수 없다. 왜 자신의 무지에 근거한 개발을 Hack이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포장하려하나. 그것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기 싫고, 이해하기 위해 들인 노력을 무위로 돌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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