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상상해본다.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사실 국민학교 시절에도,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공책에 써 본 적이 있었다; 쓰다가 포기하긴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떠올리다보면, 항상 따라오는 생각은 미래엔 어떤 것들을 알게 될까

혹은 내가 사라지고 난 몇 백년뒤의 사람들의 지적인 수준은 어떠할까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종이 출현한 20만년전 이후로 유전적 성질은 변하지 않았다.

다른 말로하면, 20만년전 신생아를 현대로 데리고와서 길러도 지적인 능력은 현대인과 다를바 없다는 뜻이다.


관심이 있는 것은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생각인데, 이것은 과거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세상과

현대인이 알고 있는 세상이 다르듯, 미래 사람들이 알게 될 세상이 지금과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한 인류 보편적인 이해를 잠시 생각하다보면,

20만년동안 유전적으로 같은 사람들이 각자 속해 있는 시대적 환경에 따라

그렇게도 세상은 다르게 인식돼 왔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인식 메커니즘에 대한 관심으로 생각이 옮겨가게 된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유전자에 박혀 있을 듯한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그대로인데, 내용은 다른 것들로 채워 왔을까.

아니, 또 앞으로 채울 수가 있을까.


1.

어떤 것이 이름을 얻어 다른 것과 구별된다.

그 어떤 것이란, 보편적인 것일 수도있고, 유일한 개별자일 수도 있다.

이름을 얻게되는 것에는 개념의 경계가 존재한다.

개념의 경계는 경계 너머 다른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개념의 표면을 2차원에 도식한다고하면, 무한 2차원 평면일까 닫힌 2차원인 구의 표면일까.

다른 말로하면, 개념의 경계는 다른 개념과 이어진 것일까 아니면 미지의 경계를 상정해야하는 것일까.


2.

어떤 경우는 관할한 결과를 해석하기 위해 추론이 발전한다.

어떤 경우는 추론을 하고나니 어떤 발견이 예견되어진다.


3.

인간의 개념의 확장은 관찰과 그 해석의 긴장속에서 일어난다.

어떤 개념은 관찰을 통해서 확장되거나 새로 추가되었고,

어떤 개념은 추론을 통해서 확장되거나 새로 추가되었다.


4.

어떤 영역에서의 무작위성, 무작위가 무작위가 아니게하는 이론의 출현.

이런 상황은 정밀도높은 관찰이라는 도구를 통해 해석하는 방법이다.

어떤 방법에서의 무작위성, 무작위가 무작위가 아니게하는 의도의 출현.

어떤 것을 추론하기 위해 도입하는 방법의 특이성은 그간의 시행착오속에서 버리고 남은 것들에 대한 체념에서 출발한다.


얼마나 빨리 처리해야하나....

어떤 특정한 상황이나 성격을 묘사할 때, 수 많은 방법이 가능하다. 그 수 많은 방법 중 하나가 최초 발화자에게서 선택되어 묘사된 후 전달자들은 큰 생각 없이 다시 쓰기 마련이다. 내가 어떤 사건에 대한 묘사를 들었을 때, 중립적인 위치에서 듣고자한다면, 그 때 제일 염두에 두어야할 것이 그런 묘사에 사용할 때 어떤 단어 혹은 표현을 통해 들었는지를 기억해두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측면의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게 되었을 때, 그 단어나 표현을 그대로 듣게 된다면, 그것은 최초 발화자와 전달자의 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고, 이렇게 듣다보면 상황을 시간 순으로 배열할 수 있어 입체적 파악을 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을 최초로 묘사하게 될 때 상황을 그대로 묘사한 것에만 집중하지, 자기가 선택한 말이나 표현에 대해서는 잊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전달하는 사람들은 그 상황을 빨리 전달하고자하는 생각이 강하므로 그 상황을 다른 말로 표현하기 보다 그대로 전달한다.


end.

핍진 (逼眞) : http://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283215&q=%ED%95%8D%EC%A7%84


핍진성이란 말은 일본어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문학용어이다. 현실을 얼마나 근사하게 그려내었는지에 대한 용어. 정말 현실에서는 거의 안 쓰는 핍진이라는 말을 요즘은 가끔 듣는다. 문학 팟캐스트를 듣다보니. (국경시장 작가인 유쾌한 소설가 김성중씨도 인터뷰에서 쓰더라마는)


핍의 한자를 찾아보니 그 용례에 있어서도 그닥 한국어에서는 자연스럽지 않다. "죄다", "독촉하다", "접근하다", "좁다"라는 뜻을 가졌지만, 죄다의 의미인 핍박하다 정도가 가장 흔한 예이며, 핍진의 핍은 형용사로서 "좁다" 정도로 쓰인 것인데, 한국어에서 핍을 좁다라는 용도로 사용하는 말은 거의 없으므로, 이 단어는 정말 허세용어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흠...

아침에 전날의 노동(?)에 의해 힘이 다 빠져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때라 할 지라도, 오늘 할 일이 내 생계 혹은 즐거운 일이라 생각한다면, 어디선지 알 수 없는 힘이 솟는다. 그러나 이 말은 그저 단순한 직장인으로서 갖기 어려운 자세에 대해 하는 말이며, 대부분은 계약 관계에 의해 끌려가는 느낌만을 갖게 된다.


정말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을 하는 상황에서 저런 최면을 건다는 것은 또 다른, 차 상위 층위에서의 굴욕감을 느끼게 한다.


동성애에 대한 짧은 생각

(오바마 정부에서, 미 연방헌법에서 동성결혼이 허용함에 부쳐)


1.

난, 가끔 집안 모임에서는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할까봐 걱정하는 눈초리를 받는다. (우스개 소리로 지나가면서 받기는 하지만.) 수년전부터 동성애뿐 아니라 성적 소수자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서 시간날때마다 얘기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른 바 흔한 동성애 문제는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더 하고 싶은 얘기들은 모노가미, 폴리가미랄지, 양성의 생식기를 다 가진 기형, 무성애자, 양성애자의 결혼 등 더 사회문제가 되지 않은 부분을 얘기하고 싶었으나 주위에선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동성애만 화제에 오를 뿐이었다.


일단 동성애에 대한 내 생각부터 정리하자면, 아니 이 모든 논의의 시작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인간은 친밀감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며, 그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모든 생명체의 고유한 속성에 해당한다. DNA 보전이라는 유전자의 이기적인 속성들이 나타내는 다양한 방식으로서 친밀감이 발전했을 뿐이다. 어떤 종은 자웅 동체이기도하고, 어떤 종은 암수가 분화되어 있지 않기도하며, 어떤 종은 태생이 결정되지 않은 것처럼 암수의 성격을 바꾸기도 한다.


인간은 암수 (혹은 남녀)로 구별되어 있지만, 이런 생명체의 유전적 분화의 역사속에서 암수로 분리되는 것이 DNA 보전에 이점이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인 것이지, 반드시 이런 분리만이 자연계에서 통용되어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DNA는 수많은 변이들이 하나의 Pool을 이루고 있으며, 이 안에서 나타나는 다양성이 그 종의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나타내게 된다.


인류 보전을 위해서 성적 지향성은 이성 상대를 향하는 것이 대다수이어야 하겠지만, 그 외의 성향이 인류 DNA 풀에 있는 것 또한 언젠가는 다른 방식으로 사용될지도 모를 일이다. 모노가미/폴리가미의 문제만 보더라도 전쟁/질병으로 인해 남성의 수가 극도로 줄어든 상황에서는 일부다처 혹은 형사취수제는 사회의 미덕이었고 그것 또한 인류 보전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작동하던 때가 있는 것이다.


2.

프랑스 혁명 이후 많은 국가들은 공적 교육이 의무화되어 가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학문의 분화가 심화되어 있다. 이런 사회에서 교육의 의무화는 필연적으로 개인의 생각을 중요시하는 사회를 만들게 되며, 획일화된 방법의 사회통제가 불가능한 시대를 만들게 된다. 종교의 위치 또한 카운셀러이지 교조화되어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게 되었다. 게다가 과학적 사고방식은 합리성을 근거하지 않으면 설득이 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고, 공식적으로는 합리적인 근거를 통해 사회가 돌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합리성의 사회에서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은 맞지 않는 옷처럼 보인다. 이런 사회에서의 차별금지에 대한 생각이 공공연하게 넓어지는 것 또한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3.

놀이로서의 성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일단 성행위가 놀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면 할 얘기가 없다. 이 놀이를 누구와 하느냐의 문제와 어떻게 노느냐로 구별해야한다. 누구와 하느냐의 문제는 이성, 동성, 그룹이 있을 수 있고, 어떻게 노느냐는 각종 체위와 다른 자극을 추구하는 여러 방법에 대한 것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수많은 조합에서 중요한 것은 놀이 주체들의 합의가 있느냐 그리고 나아가 위생적으로 하고 있느냐이다. 그런 합의하의 놀이와 자신의 성적지향 혹은 취향이 필요 충분조건으로 있는 것이다. (놀이가 아니던 시절에는 이성간 정상위 밖에는 허용하지 않게된다.)


4.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는 개인의 문제가 3번 같다는 것이고, 사회적 합의 안에 있는 사람은 그 interface를 지킬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 사회적 합의는 합리성의 시대에 현대 생물학과 다양화된 학문을 수용하는 교육이 지속되는한 계속 확장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상 짧은 생각 끝.

1) 상황을 기술하는 표현

객체는 시간, 공간에서의 상태가 있다.

객체의 시간, 공간에서의 변화를 나타낸다..


2) 감각기관을 통한 느낌을 기술하는 표현

오감을 통한 자극의 유무 혹은 자극의 정도를 나타낸다.

오감은 하나 이상의 자극이 동시에 있을 수 있다.


3) 정도를 기술하는 표현

어떤 단위를 기술하는데는 정성적인 표현이 있다.

어떤 단위를 기술하는데는 정량적인 표현이 있다.


4) 감정을 기술하는 표현

인간 내면의 기분을 나타낸다.

외부 변화에 대한 감각기관을 통하거나 내면의 생각의 흐름에 따라 기분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


5) 행동을 기술하는 표현

단순한 근육의 움직임을 표현한다.

둘 이상의 움직임을 동시 혹은 시간순서에 따라 수행하는 단위를 표현한다.


6) 비교 및 대조

선행하여 잘 알려져 있는 것과 비슷한 것 혹은 대비되는 것을 통하여 기술하는 표현


7) 의지, 욕망의 표현

1~5의 방법으로 기술되는 일 혹은 상태가 미래에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바람


8) 대명사, 대동사

1~5의 방법으로 기술되는 것을 다시 언급하기 위한 표현


9) 요약 그리고 서술

긴 문장 구조를 같은 내용을 가진 단순한 표현으로 다시 기술한다.

짧은 문장을 다른 표현을 써서 길게 기술한다.


10) 순서 및 나열로 표현

1~5의 기술이 복잡할 경우 순서대로 혹은 순서없이 나열하여 표현함.


 

세상의 지식이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 궁금하였고, 그 지식을 어떤 식으로 저장해야하는지에 대한 모델이 궁금하던 젊은 날의 고민이 늙어 죽을 때까지 취미 삼아 풀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늙기도 전에 세상은 그런 논리체계를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켰고, 내 고민은 더 이상 다다를 수 없는 무언가가 아닌 현실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과거엔 불가능한 방법이라 알려진 통계적 기법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뇌 수준의 정보처리량이 십수년내에 가능하게 되면, 아마도 닭쫒던 개처럼 지붕이나 쳐다보고 있어야할 때가 올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세상의 지식을 표현하는 방법을 온톨로지(Ontology)라 한다. 일상 대화를 하거나, 전문성 있는 작업을 하거나 능동적인 기계가 아닌 수동적인 기계로서의 온톨로지 검색시스템. 비서. 도우미. 이런 것들의 구현체를 만들어 보고 싶다.


구현체에는 인터페이스를 정의하고, 각 인터페이스는 확장가능 상태로 오픈해두는 것으로 한다.


데이터의 소스에 관한 인터페이스

데이터 가공에 대한 인터페이스

데이터 분석에 관한 인터페이스

데이터 저장에 관한 인터페이스


상황에 대한 인터페이스

질의에 대한 인터페이스


검색에 관한 인터페이스

검색 결과에 대한 가공의 인터페이스

데이터 표현에 관한 인터페이스


상황과 질의 검색결과를 종합한 로깅 그리고 데이터 소스로서 재가공인터페이스


크다.


그레고리력(혹은 공통력)에서 기원년에 해당하는 즈음의 년도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

.

BC3

BC2

BC1

AD1

AD2

AD3

.

.


즉, BC 0, AD 0년에 해당하는 연도가 없다. 따라서 BC2와 AD2의 차이는 3년차이다. +2 - (-2) = 4 가 아니라는 얘기.


0 년 문제때문에 저 계산이 천문학에서는 복잡해는 문제가 생겨서, 천문력에서는 BC1년을 0년이라 하고, BC 2년을 -1년이라한다.

따라서, 그레고리력으로는 AD1~AD100 이 1 세기이지만, 천문력에서는 0~99년이 1 세기가 된다. 따라서 2000년은 천문력으로는 21세기의 시작이지만, 그레고리력은 2001년이 21세기의 시작이다.


정교하지 않다.


  1. 지양 2015.06.06 21:24 신고

    요즘은 BCE, CE를 쓰기도 합니다. :)

    • Coolen 2015.06.07 18:20 신고

      그래서 간단하게 공통력을 괄호에 언급하고 넘어간 것이라는... ^^

17세기 철학자 존 로크가 처음 주장한대로 단어(혹은 음성의 조합으로서의 언어)와 그 뜻(개념)은 자의적이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읽을 때 깊이 읽지 않아 개론 습득에 불과하지만, 어떤 지적인 체계가 이루어 질 때, 그것은 개념이 선행하고 그 개념에 따라 적절한 약속에 의한 표현으로서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누구도 한 사람이 생각한 개념을 언어 없이 전달 받을 수는 없다. 또한 개념은 하나의 언어로만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데이터로 저장되는 개념 또한 최소한의 규약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저당된 데이터를 인간이 접근할 때는 인간이 이해하는 기호체계로 표현되어야한다.


이하에 기술하는 것은 평소생각이며, 그 생각을 지지하는 개념을 철학자의 표현을 빌어 올 수 있겠다 싶어 위 생각을 기술해 본다.


난 개념을 저장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그것이 구분이 모호한 것이라 할 지라도, 모두 수로 표현하고, 그것들의 관계들 또한 수로 표현한다고 생각하 보자. 수는 무한하다. 세상의 모든 것도 무한하다. 그들의 관계들도 무한에 가까운 방식으로 표현된다.


데이터 베이스에 어떠한 수도 들어 있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다.


학습본능을 이렇게 정의 해 보자.

- 입력 단위를 구별할 수 있다. 즉, 문자를 기반으로 한다면, 문자 하나하나를 입력단위라 할 수 있다.

- 입력단위의 뭉치를 하나의 입력단위로 취급할 수 있다.

- 입력되는 순서가 존재하며, 순서를 이해한다.

- 입력단위들의 순서 유사성에 대한 빈도를 계산 할 수 있다.

- 입력단위들의 순서상 빈도가 높은 것을 구별하여 학습 프레임을 만들어 간다.

- 프레임과 프레임 외적인 것을 분리하여 프레임을 문법이라한다면 프레임 외적인 것은 단어라 학습한다.


일단 이 정도로 말뭉치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해봐야겠다.

한글 아니 어떤 문자라도 컴퓨터상에서는 Unicode로 숫자화된다. 자연스럽게 읽히는 문장도 결국 숫자의 나열이라는 사실을 생각의 처음에 두어야한다. "자연스럽다"를 끊임 없이 의심해야 입력된 값들을 가공할 수 있으며, 나열된 문자들의 연관성을 기계적으로 표현된 연관성을 도출할 수 있다.


"자연스럽다"가 정말 자연스럽기까지 얼마나 많은 교정과정을 거쳐왔을까? 그 기준을 조금 더 연장하면, 나에게는 자연스러운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자연스럽지 않은 것들이 있고 이런 차이는 과거 교정과정의 분수령이 있었을테고, 그 교정과정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가지치기를 하여 다양한 "자연스러움"을 만들어 왔을 것이다. 그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추적과정의 끝에 "인식"에 대한 기본 동작원리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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