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

판단이라는 놈은 한 발 내 딛기 전에 효율의 눈치를 본다.
효율은 아름다운 이름을 갖기까지,
수많은 낭비를 막아 온 기억을 가지고 있다.

판단은 효율의 종이 되어 기꺼이 눈치를 던진다.

어느날, 그런 판단이 효율을 무시하고 움직였다.
여유라는 친구가 판단에게 다가와 잠시 머물렀을 그 때.
효율은 미래의 자신을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효율은 그 순간마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여,
판단을 지배함에 손색이 없었다.

여유는 효율의 다른 얼굴,
여유로움은 효율 속에 잠시 나타나는 또 다른 효율.

판단은 어리둥절,
낭비는 시대착오.

오늘도 숨가쁘게 살아간다


불러온다.
앞으로 소환한다.
내 뇌에 기록된 기억들은, 눈과 귀와 살갗의 자극으로 되살아난다.

기억의 모든 층위,
기억의 모든 덩어리,
기억의 모든 면적이 모두 외부와의 연결에 반응한다.

끄집어 내다,
자극을 주다,
그들이 줄로 연결되어 딸려 나오다.

의미있는 순서로 나오다.

난 누군가의 정제된 것을 먹고, 거친 것을 배출한다.
그 어떤 정제된 것은 다른 정제된 것을 먹고 정제 되었으리라.
그 다른 정제된 것은 또 다른 정제된 것을 먹고 그렇게 되었으리라.

최상위 포식자.
최상위 포식자의 그룹에서 포식자의 밥상에 앉아 있는 자.

파스퇴르의 아이소머, 난 고기를 소화하고, 채소를 소화한다.
나의 일부를 복원하고, 움직이고 생각하는 동력을 취한다.
착취라 이름하기 어려운 착취를 통해, 그렇게...

잘가라, 플러싱.

잠시 나를 지탱해줘 고맙다.

단어가 기억을 회상하게 만들고,

회상된 기억은 다음 문장을 이끌어 내고,

문장은 다른 문장과 이어져 의식을 전달하며,

전달된 의식이 내 안에 있을 때와 같으리라는 느낌을 되받는다.


위 문단을 쓰는 내 내면이 당신에게 전달되었나.

위 문장에 이어 이 문장을 쓰는 것은 대칭의 미때문이며,

이 문장들을 읽고서 이해가 간다는 것은

이미 당신에게 있었던 많은 기억 덕택이다.


감사하다.

익숙한 공간의 어색한 시간, 어색한 공간의 익숙한 시간.

그렇게 오래되다보니,

시간의 문제인지 공간의 문제인지 어쨌거나 익숙해졌다.


그냥 12월 거실 창가의 햇살이 좋다.

케냐AA와 예가체프 반반 블렌딩.

운동후 노곤한 삭신에 한 잔 들어오니,

여기가 그냥 익숙한 공간이구나.


매일이 오늘같이

오늘은 그 매일같이

무기력과 친구와 원수를 맺고,

전체가 하나인듯, 하나가 전체인듯 사라져간다.

하루라도 불안하지 않은 날이 없다.
세상이 지나가는 속도는 더 빨라진 것 같고,
나는 한 없이 멈춰있는 사람 같다.

신경이 예민해졌고,
작은 일에도 화가 난다.
이런 상태가 내 에너지원이라는 것을 안다.


불안한 내적 상태가 밖으로 표출되려하고,

그 상태를 끄기 위해 때로는 일에 몰두하고,

때로는 더 큰 일을 도모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위로를 기다리며,

불안하지 않으면 어찌 발전이 있을 수 있을까.


모두 다 알지만, 고통은 고통이다.

제일 격에 맞지 않는 말이 하나 있다면,

묵상을 통해 내면의 평안을 구하라는 말이다.


에너지를 그저 사그러뜨릴 수 없다.

그렇게 애 늙은이처럼 살아온 인생은

다시 돌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갖지 못했으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표정지으라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가는 위선을 연습하라는 것이다.


불안한 내면은 그대로 두자.

코로나처럼 솟아 오르는 제어안되는 불길이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이루기 위해선,

지금 이 순간을 그저 살아내는 것 밖엔 없다.




아플 때 아프다는 소리를 못지르는 것만큼 서러운 것이 있을까?

아프다는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듣는 이 없는 것만큼 외로운 것이 있을까?

아픈 것을 회피하고 싶어서 잠시 아픈 것을 외면해 보지만,

결국 그 상태로 다시 돌아가야하는 것만큼은 외면할 수 없는 아픔.


자유롭다는 느낌이 주는 자유로움과

아프다는 느낌이 주는 아픔


기대하는 것을 제거해야 자유로워지고,

원하는 것이 없을 때 아프지 않으려나.

뿌리 내리지 않음


뿌리 내리지 않는다.

뿌리 내려지지 않는다.

내 안에 들어온 사람, 생각, 사물에

뿌리를 내리지만, 깊이 내려지지 아니한다.


생각하며, 만지며, 맛보며,

결합하며, 떼어보며, 관찰하며,

비교하고, 대조하고, 정리한다.


뿌리 내리지 않는다.

한계의 상황에서조차

세포막으로 이해할만한 관계일지라도.


뿌리는 어둠 속을 계속 벋어나갈 뿐

그 흙과 결합하지 않는다.


밤이 되면 동쪽 하늘엔 아무도 봐주지 않는 새털 구름이 뜰거야
새털 구름이 도시의 붉은 빛을 머금고 아무도 몰래 남쪽으로 날아가도
누구하나 이름 지어 주지 않아서 그냥 사라질지도 몰라

저녁엔 어디서들 기어 나와 생명 연장을 위해 몇 그램의 식사를 하고
웃고, 떠들고, 그렇게 지나간 시간을 하루라고 하겠지.
삭신을 끌고 집에 들어가선 텅빈 마음을 공간에 투여시키고
그대로 소파에 앉히고, 눕히고.

그렇게 그렇게 이름없는 구름과 시간에 대하여
난 스스로를 위안하고 잠에 들거야.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1. 심슨 2012.11.03 21:25 신고

    한주도 수고 많으셨어요..

    • 최호진 2012.11.05 10:03 신고

      수고 많았수. 이번 한 주도..

푸른 단풍나무가 흔들린다.
나무에 매달린체 흔들흔들 춤을 추는 것은
세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얀 연기가 파란 하늘에 모여있다.
저 구름이 움직이는 것은
새들이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까만 밤의 깊은 곳에 희미한 빛이 있다.
별은 보석으로 만들어진 상상의 도시.
어쩌면 이해를 거부해 숨고 싶은
까만 마음들이 모인 빛나는 오해.

머리카락을 센다.
14만 4천 백개, 스무살이 된 여인은 마음이 가볍다.

어젯밤 어두운 밤 바닷가
한 줌의 모래를 움켜쥐고
토파즈와 에메랄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브릴리언트 컷 토파즈는
만칠천육백구십일개의 빛줄기를

나무와 구름과 그리고 그녀에게
나누어 감추어 둔다.

바람이 차갑다.
아직 이해하지 못한 한숨이
바람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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