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요 몇달 앞으로 몇달은 내 인생에서 살짝 어두운 시기라고 생각된다. 창업을 잘 이어나가려면 기회와 사업 관계가 중요한데, 이들의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난 어떤 프로젝트 하나를 돕고 있다. 난 매우 실망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큰 소리는 하고 있지 않다.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상황이 정리되지 않는 이상, 난 다른 내 프로젝트에 신경을 쓸 수가 없다. 정작 한달 반 전에 끝났어야 할 일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혼자 있을 땐, 욕을 수없이도 해댄다. 허공을 향해, 시공간의 대리자인 허공은 내 욕을 잘 받아 준다.

달력의 변화에 목표를 세워서 그때까지만이라고 스스로 정하며 달리는데, 정작 달릴수록 할 일이 늘어난다. 중요한 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으므로, 피해 가야 한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죽음의 문턱을 밟고 되돌아 온다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죽음을 맛보고 왔을지라도.
사람이 변하는 것은 두꺼운 얼굴 속에 숨을 때나 가능하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변하지 않았음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을 것이다.

  1. smij 2019.10.14 14:03

    힘내세요

  2. tolkien 2019.10.29 11:06

    창업 하시나요?

    • Coolen 2019.10.29 12:47 신고

      창업은 이미 해 있는 상태지요. 정착을 못해서 그렇....

독립영화, 25관왕인지, 화려한 수식어가 있지만, 독립영화의 한계에 머문 영화를 지원하기 위해서 혹은 극찬하는 평에 대해서 확인하고자. 성인2+청소년1 인에 대한 예매를 단행하였다.

사실 성수대교 무너지던 그 시점의 기억이 소환되어 나를 예매까지 이끌었다.

서비스 하나를 수정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내가 원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하지만, 담담하게 일을 하고 있다. 아니 담담하다는 것은 잘 자고 일어난 날 일에 임하는 분위기이며, 조금 무리한 다음 날은 (상당 수가 그런 날이긴 하지만) 내 입에 그런 욕이 자연스럽고 찰지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요즘 새삼 느끼면서, 실천(?)하면서 보내게 된다.

내가 하는 모든 프로그래밍은 다 칼을 갈고 닦는 것이라 생각한다. 잠시라도 무뎌디지 않으려면, 칼을 갈고 칼을 검사하고 칼을 시험해 보아야한다.

최대한 이 고통 속에서 미래에 사용할 가능성 있는 기술을 시험해야한다. 다음 고통이 다가 올 때 웃지는 못해도 초연할 수 있어야하니까.

난 이런 내 상황 속에서도 사람의 길을 찾으려 한다.

잠시 허우적대고 있을뿐, 다른 에폭에선 튀어 오를거야.

가끔, 아일랜드인 돌로레스의 목소리가 들려서 앨범을 듣는다. 어떤 노래에선 전 직장의 회식 후 노래방 간 기억속에 있던, 동료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아무 의미 없이 그날의 인상은 그냥 떠오른다.

그렇게 자주 듣던 성시경도 이젠 뜸하게 듣게 됐다.

High Risk, High Return

평범한 일상에서 출렁임이 크지 않으면 결코 그 파동이 물밑 진흙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온 바다가 출렁이고 뒤섞여야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노회찬의원의 죽음을 애도하며.

오늘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아마 애정의 정도가 강한 공인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지인들의 애도와 여러 또 다른 진보지식인들의 추모의 글 혹은 정의당원들의 글들을 보면서, 심정적으로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의 감정이 무너져 내렸음을 보게 되었다.

나 또한 그러하다.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아무리 그가 잘못했을지라도 그간 내가 지지해 온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잘못의 크기보다 기대의 크기가 더 크기 때문에 안타깝다.

그 동안 내가 좋아하는, 심정적 지지를 하는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이 기회에 좀 더 해야겠다. 잘못을 인지하는 순간 내면에서는 일종의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믿어온 대상으로부터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면죄부를 주고 일상을 회복하는 것을 보아야 내 내면의 충격이 완화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우리는 노 의원에게도 기회를 얼마든 줄 수 있었다. 그의 지지자들 중에 반성하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박탈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용하려들겠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사과하고 진정성있는 모습을 계속 보이면 그간의 쌓아온 신뢰를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실수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다만 비겁한 인간만 있을 뿐이다. 내가 잘못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 난 비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반문해야한다. 타인의 시선이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다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하지는 말아야한다.

난, 오늘 그냥 당신의 선택에 대해 계속 반문하고 싶다. 꼭 선택을 그렇게 하셔야만 했느냐. 잘못의 당사자가 된 것이 그렇게 견딜 수 없으셨냐. 당신은 늘 유쾌하게 호통할 수 있는 사람아니었느냐. 왜 당신에게 내리는 선택은 그렇게 가혹하셨느냐.

오늘을 잊을 것같아 오늘을 박제해 둔다.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하나 떠 올랐다.

친하려고 다가오는 사람 중에서 피해야 할 사람이 둘 있는데, 하나는 위선자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가 바보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물론 그 다가오는 사람이 남자라 가정하고 생각난 말인데, 이 말은 반대입장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갈 때 자신에게도 적용할 만한 말이다.

이제 곧 스무살이 되면(2년뒤) 자취시키려 내보내겠다는 말을 하니 제발 그렇게 해달라는 말을 듣고나서, 사무실로 출근하고 나서도 여운이 남아 떠오른 생각이다.

생각하면 우습기는 하지만, 자취하는 젊은 여인에 대한 남자들의 환상을 알려줘야하지 않나 싶어서다. 

하나는 문제가 생길 것이 뻔한 결론으로 진행 될 것같고 다른 하나는 아무 일도 없고 귀찮은(?) 존재가 되기 싶기 때문에라는 얕은 경험의 결과이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뭔가 솔직한 사이, 좀 더 건설적인 주제가 오고 갈 만한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고, 또한 딸도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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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각 끝에 갑자기 이종학이 떠 올랐다. 별 이유가 없이. (피식) 언제 술 한 잔 해야지.

한동안 블로그를 하루에 하나씩은 쓰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서부터 멈추게 됐다.

이제는 그 이유마저 희미해진채 습관하나를 잃어 버린채 살고 있다. 


문득 나도 모르게 자투리 시간마저 쓸어 담아 어딘가로 버리며 산다. 

틈틈이 쉬지 않고 뭔가를 본다. 짬짬이 쉬지 않고 뭔가를 듣는다.

말하기 쓰기보다 듣기와 보기를 반복하는 것은 내면이 허전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배우다가 사라지는 아무 의미 없는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다.

뭔가를 어설프게 실행하는 아마추어가 되고 싶지도 않다.


감정에 솔직할 수도 없고,

생각대로 살 수도 없고,

눈치보며 살고 싶진 않고,

마음대로 살 수도 없다.


조급한 여유로움이 정신을 휘감고

부러워하는 나태함이 마음을 억누른다.


生의 列車는 멀고 먼 消失點을 향해 끝내는 사라지려고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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