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샌 일부러 마크다운편집이 가능하면 그걸 써보려고 노력한다. 오래 알아왔지만, 글 쓰는 일이 줄어들어 마크업이 할 일이 줄어 드니 영 느리다. 그래서 간단한 의식의 흐름대로 기술을 할 때, 쓰는 나와 읽는 당신의 관계에서 단순히 글의 연속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닌, 강약이 전달되려면 강조 혹은 병렬적 정보전달은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머라고 주절 주절 쓰는 것은 사실 마크다운 문법을 테스트하기 위함이지 그 ^이상^도 이하 도 아니다. 어떤 문법은 것은 지원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고려해서 테스트해 본다. 문법을 익히는데 쓰는 글은 의미가 없어도 상관없고, 표현이 거칠거나 맥락을 뛰어 넘는 전개 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글의 모양을 갖추려면, 가독성이 고려되어야하고 적당한 길이어야하며 무엇보다 독자가 ..
'밀리-마이크로-나노-피코'로 이어지는 1/1000 단위의 스케일을 내 주위에서 느껴보는 것을 도와주는 명상법이며, 1분도 안 걸리며 세상과 잘 감응하는 방법이다. 숨을 거칠게 쉬거나 참으면 오히려 예상치 못한 교란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마음을 잡아주는 용도로 사용한다. 각 단계에 숫자를 붙여서 0) 미터, 1) 밀리, 2) 마이크로, 3) 나노, 4) 피코의 단계로 점점 내려간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0단계 규모의 사물을 인식하면서 산다. 우리의 주의 집중을 0 단계로 하면서, 엘레베이터를 탄다. 네 개의 사물을 보거나 상상한다. 1초에 하나씩. 거울, 긴 막대 손잡이, 모서리에서 모서리, 외부에서 엘레베이터 탄 내 모습을 상상한다. 이들은 0단계에서 관찰되는 1미터 언저..
npm, yarn을 설치했다면, bootstrap theme 변경을 위한 초간단 테스트를 할 수가 있다. #!/bin/bash mkdir bootstrap-customizing cd bootstrap-customizing yarn init -y yarn add bootstrap node-sass mkdir -p public/css yarn node-sass --recursive --output public/css \ --source-map true --source-map-contents true \ node_modules/bootstrap/scss bootstrap은 scss로 관리되고 있으므로 yarn(npm)으로 받아다가 바로 컴파일 해 볼 수가 있다. 위의 예는 directory 만들고, 빠르게 n..
unzip 을 구현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 뻘짓이 되긴 할텐데, 동기는 이렇다. 윈도우에서 한글로 된 파일을 압축하면 맥에서 잘 풀리지가 않는다. 7z으로 풀어 볼까? 7z도 안되는군. 7z 옵션중에 charset을 지정하는게 있더라. CP949를 넣어보니 안된다. 아, 이게 머라고, 2020년에도 고통을 받아야하나. huffman coding 이런거 봐야하나. 그 테이블 튜닝을 하면 성능이 더 좋아지려나? 실리콘밸리의 파이드파이퍼는 대체 뭘 쓴 거지? 아 놔..
숫자 읽기 어느날 뛰다가, 큰 숫자 읽기법이 우리와 미국이 달라, 쉼표로 끊어 쓰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아예 숫자 시스템을 바꾼다면 어떻게 바꾸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해 봤다. '1234567890'은 십이억 삼천사백오십육만 칠천팔백구십인데, 우리는 네 자리에 해당하는 천백십일을 반복하여 조,억,만 단위로 끊어 읽는다. 따라서 12,3456,7890이라고 쓰면 참으로 좋다. 영어권에서는 1,234,567,890 이렇게 끊어 쓰고, 1빌리언 234밀리언 567싸우전 890이라고 읽는다. 귀찮음이 밀려오는 순간, 조금 양보한다면 숫자시스템을 조,억,만을 영어식으로 바꾸면 어떨까. 어차피 조빌밀천정도로 해서, 그냥 '1,234,567,890'을 일빌 이백삼십사밀 오백육십칠천 팔백..
내가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였을지도 모른다. 이 한 문장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쓸 때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였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내 내면에 준 생채기는 그것이 비록 아물어서 담담하게 혹은 웃으면서 술 한 잔 하며 말 할 수 있을지라도 사건과 연관된 간단한 상황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기분 당시의 감정 상태를 소환하여 괴로움에 빠지게 만드는 늘 준비 된 버튼으로 남아 있다. 그 생채기를 누르는 순간 짓무른 고약함이 내 공간을 채우며 내가 마시는 공기를 바꿔 버린다.
늦어지고 있다. 유튜브나 팟캐스트로 bash script 강의를 만들 생각이 있었는데, 계속 늦어지고 있다. 대략의 얼개는 있지만, 생각이 벋어나가느라 당최 시작을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이것을 왜 하고 싶어 할까? 난 다른 일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 더 벌려 놓는 것이 좋은 것일까? 나 혼자하는 것이 괜찮을까? 영상없이도 들을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고 싶은데 이때 필승(?)전개는 어떤 식이어야하나? 들을 사람들은 대중이 아니라 어느 정도 전문가인데, 이럴 땐 유료강의로 해야하는 걸까? 아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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