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게는 1분정도 대리석이나 타일들을 물끄러미 바라봐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양치를 할 때도 물론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곤하지요. 오늘은 울긋불긋한 대리석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물표면 가까이에서 헤엄치고 있는 고기 한마리를 보았습니다. 그 녀석은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잠시 눈을 돌려 보니 곳곳에 여러 모습을 한 물고기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그 물고기들이 나를 보고 있어 왔고,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더군요. 나는 누군가를 보고 있으며, 나는 누군가에게 보이고 있었습니다. 좀더 독한 말을 아끼고, 좀더 차분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기회는 만드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다, 잡는 것이다. 기회주의자란 기회라 생각되면 현상태를 포기하고 얼른 잡는 사람을 말한다. 같이 있는 사람에게서 기회란 곧 헤어짐을 수반할 수 있다. 같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언젠가는 그런 기회가 올 것이다.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오는 것이다. 세옹지마처럼 지금은 어려우나 곧 기회가 올 것이다. 난 한 가지를 깊이 팠고, 그랬더니 기회가 왔을 때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늘 곁에 있는 것이 아니야. 있을 때 잘해. 이상 기회에 대한 브레인 스토밍 끝! 이 글을 생각하게된 동기는 기회란 잡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에서 출발하였으며, 몇 분 연상하여 얻은 결론은 그것과는 별개로 같이 일하는 사람들..
바퀴를 다시 발명하면 안되나? 다시 발명하지 말아야할 이유는 전임자의 노력을 조사하지 않고 무모하게 뛰어드는 것을 막기위해서 이겠지만, 우리는 바퀴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볼 몇가지 이유가 있다. 바퀴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하는 것이이라. # 널리 쓰이고 있다. # 척보면 그 원리가 뻔해서 비밀이 없다. (타이어의 복잡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이 원이라는 얘기) # 조금 어렵다 싶은 것도, 상당히 많은 문서를 뒤져서 찾아낼 수 있다. 위와 같은 조건을 만족하지 않으면, 다시 발명해도 좋으리라. 이 글을 쓰는 것도 누군가 비슷한 글을 썼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쓰는 이유를 바퀴 발명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이 글은 3번에 대한 게으름 때문에 쓰는 것이다. 위와 같은 세가지 ..
"나 자신의 한계를 잘 알아야한다"는 말은 간혹 사람을 무기력하거나 고착되게 만든다. 내 인생의 퀀텀 점프는 그런 한계를 갑자기 뛰어 넘어 다른 궤도에 올린다는 말인데, 한계를 아는 것과 그 한계를 넘어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퀀텀 점프라는 말이 멋있는 말처럼 들릴 것이다. 난, 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애초부터 한계라는 것은 없었다. 선을 그어 놓고 사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어쩌면,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살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생활의 모습에서 나온 생활 패턴이 아닌가 한다. 그런 한계를 긋는 일을 일반화하여 자신의 능력에도 적용하는 것이 아닐까.... 내 능력과 내 관심사를 제한하는 것은, 쉽게 어떤 일에 대해 배타적이 되거나 관심 밖의 영역이라 치부하여 대화를 멈추는 것..
창조란 "공허와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창조란 "질서와 상식에 대해 변형을 가하여 다른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결국 기존 질서를 부분적으로 파괴하는 속성이 있다. 결국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유에서 다른 유를 창조하는 것의 차이일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중간 과정이 없이 마지막 모습을 이룬것일까? 중간존재를 가정하는 순간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므로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나 질서와 상식에 대해 변형을 가하는 것은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에서 유라는 것과 유에서 다른 유를 창조하는 것으로 대치될 수없다. 유에서 다른 유를 창조한 다는 것은 중간 존재를 먼저 만들고 중간존재의 재결합을 말하는 발명수준의 것과, 마지막모습에 대한 변형을 이루어, 다른, 하..
국민학교 들어 가기전의 기억은 몇개 없다. 태어난지 6년이라는 시간동안의 기억이 단 몇 컷이라니, 정말 컷으로밖에 기억되지 않는 순간만 흑백으로 들어 있을 뿐이다. 내 어릴 적 사진으로부터 기억과 분리해서 적기란 힘든 것이다. 지금 적는 것은 사진으로 갖고 있지 않는 기억들이다. 사실 어릴적 사진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기억하는지, 원래 기억하고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 동생 수술 받아 입원해 있는 날, 아버지는 손수 밥을 하셨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고... * 어느날, 부산에 살고계시는 (현재는 부천에 사시는) 고모부께서 장난감 탱크를 사오셨다. 그놈은 뿅망치와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는 윗부분을 치면 실제로 플라스틱 포탄이 앞으로 나가는 위력적인 장난감이다. * 동생이 팔에 화상을 입었다. 재..
전화를 통해 도움을 요청할때, 최근의 서비스는 지능적인면이 있다. ''' "지금은 전 상당원이, 통화중이오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이런 것은 어떨까? ''' "당신은 지난번 통화때, 75번 상담원과 통화하셨습니다. 현재 75번 상담원은 통화중오니, 대기하시려면 1번을 다른 상담원과 연결을 원하시면 2번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 프라이버시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 구내 전화의 경우 외부로 나가는 모든 발신자 전화번호가 같을 수 있으므로, 조금 효용이 없겠구만. 그렇다면, 시작번호가 이동전화 번호라든지, 별정통신 사업자가 아닌 식별번호일 경우에만 저장할 수 있는 옵션을 가진다면, ARS 시장에 도움이 될 것도 같은데 말이지... 없다면.. 누가 만들려면 만들던가... 에잉.. 나몰라라..
2002.2.27. Wed. 이글은 사람이 어떻게 욕심을 부리게 되는가에대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어린아이를 키우다보니 신기한것중 하나는, 배고플때 젖을 물리면 먹고 싶은 양 이상은 먹지 않는 것을 보았다. 정말 단순하지만, 이 아이가 언제부터는 자기가 먹고 싶은양 외에도 더 먹는 날이 올 것이다. 아까워서, 또는 맛있어서. 어떻게 그런 변화가 생기는 걸까. 누가 그에게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라는 암시를 주었을까? 생명이라는 것은 자극을 받으며, 외부 세계와 통신을 하게 된다. 그 상황의 다양한 반복이 자기 존재와 생명이라는 본능과 연관되어 있는것이다. 그렇다면 자극에는 다음 세가지의 경우가 있을수 있는데, 이는 생명이 처하게 되는 기본적인 상황이다. 첫째로는, 자극이 없는 상황인데, 사람이 자극이 없다..
2003.3.28. Fri. 가슴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머리로 생각한다는 개념이 보편화되었을까? 과연 생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정신적 활동은 육체의 자극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또는 그 반대는 어떤관계에 있을까? 이 생각의 시작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미이라를 만들때, 코를 통해서 뇌를 빼낸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이유는 그들 문화에서는 생각하는 위치가 가슴이라고 여기는 데 있다고 들었다. 그말이 사실이건 거짓이건간에,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했으며, 당장에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생각하는 기관이라고 알고 있는 집단을 상상했으며, 그런 문화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를 즐거운 상상쯤으로 사유해보았다. 그 뒤로 시간이 날때마다, 가슴으로 생각해보려고 했으며, 심지어는 머리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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