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뉴스의 기사에서,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602601002

외신은 “일대가 과거 소인국이었다는 가설을 증명하듯 최근까지 마크후니크 주민의 평균신장은 150cm가 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평균신장이 150cm가 넘지 않는다니, 이런 의미 없는 표현이 다 있나. 최대 신장이 150cm가 넘지 않는다로 읽어야하는 걸까?

'Node.js에 딸려 있는 v8 엔진 소스 좀 봐야할텐데...' 라고 생각만 하고 있다. JavaScript로 만든 소스가 v8 엔진을 잘 사용하기 위한 방법으로 구현되어 있어야하지 않는가.


  • Jay Conrod: http://jayconrod.com/tags/v8


KBS 모 인사가, 세월호 사건 사망자 수와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 수 비교를 하며 후자에 비해 적다라는 말로 된서리를 맞았다.


사람들이 이 발언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을 잘 들여다 보면 통제 가능한 사망과 그렇지 못한 사망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불행을 개개인이 아닌, 사회가 미리 예측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시대의 사회 구조이다.


Mac의 영문 키보드로는 Option 키(윈도우 키보드상의 Alt)를 눌러서 그래픽 문자를 쓸 수 있다. 그 중 Option + C (Alt + C) 는 "ç"를 입력할 때 쓴다. 따라서, 프랑스인을 화나지 않게 하려면, Option + C로 뭔가를 구현하지 않아야한다. 아니 Option + 조합은 테스트 편집기능이 동작하는 곳에서는 뭔가를 하지 말자. 

티티우스 보데의 법칙은 휴리스틱의 초판왕아닌가? 지구가 중심이 된 식이긴한데, 이거 수성을 시작점(n=0)으로 하는 식은 없으려나.

Javascript가 유행이 된 그럴싸한 역사를 펼쳐보자면 이러하다.


Javascript 문법은 표준화되어 있지만, 구현 정도가 달랐다.

Web Browser만 Javascript를 지원하던 시절, Web browser의 DOM 객체들이 조금씩 달랐다.

이런 다양한 환경을 통일 된 방식으로 지원하기 위해 Javascript Framework들이 등장한다.

이 Framework들은 단지 통일된 방식을 지원하는 것 이상으로 여러 개념들을 지원한다.

그 중 웹서버 처리결과에 대한 비동기적 콜백을 지원하는 개념들이 발달한다.

태생적으로 Javascript는 함수를 객체로 다루는 놀라운 개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이 환경에 너무도 적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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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V8엔진을 공개한다.

이 엔진은 스크립트를 중간코드로 컴파일하지 않고 해당 CPU의 컴파일한 결과로 수행한다.

자바스크립트의 수행 속도가 빨라지자 많은 개발자들은 다른 많은 좋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브라우저에만 주로 사용하던 것을 서버에서도 사용한다.

서버에서만 사용하던 것을 DB에서도 사용한다.

게임내에 임베디드 스크립트로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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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는, MS의 웹서버 언어인 ASP를 Javascript로도 작성할 수 있었고, Windows의 많은 시스템 조정 명령은 Javascript로도 작성되어 있었으며, 브라우져의 플러그인 들 정도에 사용되었을 뿐이다.


이상이 2005년~2010년이 오기전까지의 일이다. 2010년 이후에는 Javascript 사용이 일상적인 일이 돼 버렸다.


Javascript가 가지고 있는 유행의 유전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함수를 객체로 표현할 수 있는 (First class object) 문법이 존재한다.

2. 네트워크 프로그램은 태생적으로 비동기적인 환경이며, 이를 위의 문법이 지원하기 쉽다.


Javascript가 유행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브라우져 시장을 군웅이 할거하고 있었다.

2. JIT Compile을 지원하는 속도 빠른 엔진이 나왔다.



아이폰과 맥북의 운영체제인 iOS, OS X에 사용되는 커널의 이름이 Darwin 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Darwin 커널의 마스코트는 삼지창을 든 오리너구리인데, 

삼지창은 BSD 계열을 나타내는 마스코트에서 주로 보이는 것이고, 

이 오리너구리의 이름은 Hexley인데, 

이것은 다윈의 진화론을 널리 알렸던 생물학자 Huxley를 기념하는 것이다.

(사실 오타인 줄 모르고 널리 쓰이다가 고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미리 알고 막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단순히 사망자 수의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세상을 예측 가능한 상태, 즉 제어할 수 있는 상태로 계속 바꾸어 왔다. 그 흐름에 거스르는지 아닌지가 제일 먼저 고려 되어야 한다.


제어가능 상태라는 것.


현대를 사는 인류 문명안의 사고 대응도 그렇고, 자연에 대한 두려움에서 종교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도 그런 결과이고, 미래에 어떠한 미지에 대한 호기심도 그 상태에 대한 추구이다.


기억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 블로깅을 한다.

감성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 블로깅을 한다.

아이디어를 붙잡아 두기 위해서 블로깅을 한다.


블로깅 = 메모 수준이고나.



PPSS에 게재 된 "전문번역자에게 필요한 덕목: 원본을 향한 덕심"을 보다가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 지를 새삼 깨닫는다.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른다"라는 말은 덕질의 끝에 작은 구멍을 누군가 지적할 때 아무 사심(?)없이 하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모른다라는 말의 무게감은 어느 분야에나 같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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