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일을 잘하면 돼... 라는 말을 싫어한다. 되게 싫어한다. 나아가 그런 분위기가 감지되면 속에선 뭔가를 참아내느라 이를 살짝 물어야한다. 뭐, 오해할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사농공상 계급사회가 유지되는 방법으로 들리고, 자기 분야가 아니면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고,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이 인생에 대한 주제로 얘기하는게 버릇없이 들리며, 뭐든 말없이 묵묵히 가는게 최고라는 생각을 심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에 비해 내 관심은 너무 다양하며, 내 의심은 그 깊이를 모르며, 내 자유의 벗어남은 한계를 모른다. 어찌 내 자리라는 게 있으며, 어찌 내 위치에서의 일이라는게 규정될 수 있다는 말인가.
내 지식 수준이 딱, 20세기 초반의 최소의 공리 체계를 찾아 그 위에 세상의 지식을 쌓아가려고 하는 것 같다. 아직 괴델의 증명을 뒤엎을 후임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이긴하지만, 내 수준이 누굴 따라갈 수 있을까. 아직도 괴델이 내게 어려운 것은, 세상은 그의 숫자들이 세상의 언어와 형식을 기호화하였지만, 이미 기호화 되어 내 기존의 언어체계를 벗어나는 순간, 다른 세상의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난 아직 내 논리의 언어를 다 다듬지도 못했는데, 그것을 숫자화 시켜버리고 증명의 전개 방식을 다른 식으로 전개시키다니. 나쁜 사람.
내가 조직 생활에서 가장 보기 싫은 부분은, 말을 하는 사람의 중요도와 듣는 사람이 판단하는 그 말의 중요도가 다름에도 자신이 중요한 것을 한 번의 설명으로 다 전달될 것이라 믿는(?) 상황이다. 그것은 심지어, "이것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라는 말로 시작하는 화법에 있어서도, 듣는 사람은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잘 전달되려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그 대화 외의 부분에 있어서 신뢰하는 정도가 쌓여서, 미묘한 뉘앙스와 말외의 감정표현이 전달되는 관계여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몇번의 그러한 일들을 경험하고, 또는 은연중에 그러하리라 판단되는 간접경험을 통해서 내린 결론은, 내 주위 사람들에게 특히나 내 말을 들어 줬으면 하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적인 신뢰와..
오늘 기분전환겸, bearcat을 재작성할 마음을 꺼내었다. 전부터 python으로 다시 만들어볼 생각이었으므로, 첫번째 구성품인 dhcp daemon부터 알아보았고, 간만에 bootp 프로토콜좀 보다가 대략 client의 packet을 분석할 수준으로 깨작거려봤다. experimental 디렉토리에 몇줄 커밋하고 정지. 이 다음은 언제 또 이어서 할지는 미지수... 뭐 머리가 좀 아프고, 신경을 돌려야할 일이 생기면 이어서 하든가 하겠지요. 작업은 Mac mini에서 하고, client는 Windows PC에서 virtual pc를 돌려서 PXE boot를 시도하면서 테스트하면 간단한 테스트 환경이 됩니다. --최종 프로젝트 이름은 pyboot이며 현재 위치는 https://github.com/cool..
- Total
- Today
- Yesterday
- 식물
- 디버깅
- Subversion
- Linux
- 클레로덴드럼
- nodejs
- 퀴즈
- VIM
- SSO
- MySQL
- TCP/IP
- 대화
- SVN
- macosx
- 커피
- url
- Tattertools plugin
- writely
- 덴드롱
- 오픈소스
- JavaScript
- tattertools
- 수선화
- 킹벤자민
- ssh
- BlogAPI
- perl
- OpenID
- 구근
- 벤자민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